본문 바로가기
글과 말/책 리뷰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by Stefanokim 2025. 8. 14.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펼치면, 독자는 한 여인의 마음속에 스며든 고요한 불안을 만나게 된다. 이야기의 표면은 간단하다. 서른아홉 살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폴은 오랜 연인 로제와의 느슨한 관계 속에서 어느새 식어버린 열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로제는 젊고 활기찬 여성들과의 가벼운 연애를 즐기고, 폴은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관계를 끊지 못한다. 그런 그녀 앞에 스물다섯의 청년 시몽이 나타난다. 그와의 대화, 그의 관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여자로’ 다시 바라봐 주는 시선에 폴을 흔든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곧 질문이 된다. 사랑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나이, 조건, 혹은 마음의 온도인가?
 
사강의 문장은 언제나 그렇듯 차갑게 빛난다. 불필요한 장식 없이, 마치 투명한 유리창처럼 인물의 심리를 드러낸다. 폴의 마음속에는 ‘지금의 자신’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망과,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인정해야 한다는 체념이 나란히 서 있다. 그 두 감정 사이의 간극이 이 소설의 온도다. 브람스의 음악이 흐르는 장면에서, 사강은 사랑이 단지 뜨거움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브람스의 선율처럼 사랑은 느리고 길며, 때로는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그러나 그 느림이 언제나 안락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느린 선율은, 변화 없는 하루처럼 사람을 지치게 한다.
 
로제와의 관계는 오랜 세월 쌓아온 익숙함으로 유지된다. 그는 폴을 떠나지 않지만, 그녀를 온전히 바라보지도 않는다. 반면 시몽은 젊음과 새로움, 그리고 사랑을 증명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하다. 폴은 그 둘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녀가 로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한 애정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관계가 주는 안전함, 스스로를 규정짓는 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아직 버림받지 않았다’는 묘한 자존심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정은 동시에 무기력과도 닮아 있다.
 
사강이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젊음과 나이 듦을 대립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몽의 젊음은 분명 매혹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폴을 설득하지 못한다. 로제의 무심함은 차갑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사랑의 잔향이 있다. 포로는 그 중간에서 스스로의 욕망을 탐색한다. 그녀가 시몽과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의 속도’를 받아들이는 행위처럼 보인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은 단순한 취향의 질문 같지만, 사실은 마음의 방향을 묻는 은밀한 고백에 가깝다.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당신은 느린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당신은 오래된 것 속에서 여전히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된다. 시몽은 빠르고 뜨겁지만, 브람스를 이해하지 못한다. 로제는 브람스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선율을 함께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폴은 그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이 이미 로제의 속도에 맞춰져 있음을, 설령 그 속도가 불행일지라도, 깨닫는다.
사강의 인물들은 사랑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이 때로는 습관이고, 타협이며, 자기 기만일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동시에 그 타협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놓지 못한다. 포로가 시몽을 향한 문을 완전히 닫는 순간, 독자는 그것이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스스로의 나이와 선택을 받아들이는 의식임을 느낀다. 그 장면은 결코 승리의 순간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패배도 아니다. 그것은 삶이 요구하는 고요한 결론이다.
 
사강의 문학은 이렇게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폴의 선택이 옳았는지, 시몽의 열정이 과연 더 좋은 사랑이었는지, 로제가 진짜 비겁한 것인지—그 어떤 것도 명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연애와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그 붙듦이 사랑인지, 습관인지, 혹은 단순한 두려움인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랑의 황혼에 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은 젊음의 전유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이 듦 속에서 자동으로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여전히 선택이고, 그 선택은 때로 자기 자신을 향한 인정이기도 하다. 폴이 결국 로제 곁에 남기로 한 순간, 그녀는 어쩌면 이렇게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브람스를 좋아해요. 그리고, 이 느린 음악 속에서 살아가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