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과 말/책 리뷰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읽고

by Stefanokim 2025. 8. 15.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가정의 안온함과 파괴, 그리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감당해야 하는 불가해한 고통을 냉정하면서도 처절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던 한 부부의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1960년대의 흐름과 거리를 두고, 자신들만의 ‘고전적인’ 이상을 꿈꾼다. 넓은 집, 여러 명의 아이들, 평생 함께할 가족의 울타리. 그들의 결혼 생활은 처음에는 그야말로 그림 같았다. 아이들이 하나둘 태어나면서 집 안은 웃음과 울음, 그리고 예측 가능한 행복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다섯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 세계는 한순간에 변한다. 벤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의 몸 속에서 폭력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해리엇은 그가 자신을 안에서부터 밀어내는 듯한, 거부의 기운을 느낀다. 태어난 벤은 형제들과도, 부모와도, 심지어 인간과도 다른 존재처럼 묘사된다. 그는 언어를 익히는 속도가 느리고, 감정 표현이 거의 없으며, 힘은 비정상적으로 세다. 가족의 일상은 점차 그를 중심으로 긴장과 불안으로 변해간다.

 

이 작품의 감동은 단순히 ‘문제아’의 등장으로 가족이 무너진다는 서사에 있지 않다. 레싱은 벤을 ‘괴물’로만 그리지 않는다. 벤은 분명 파괴적인 존재지만, 동시에 그 파괴는 벤의 의지가 아니라 본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독자가 느끼게 한다. 그는 자신이 속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부유하는 존재이고, 그 부유는 해리엇이라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묶인다. 해리엇은 그를 사랑하려고 애쓴다. 가족과 사회 모두가 그를 버려야 한다고 말할 때, 해리엇만이 끝까지 그를 품는다. 그러나 그 품은 곧 해리엇 자신과 다른 아이들, 가정 전체를 희생시킨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사랑이란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는가? 한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과연 절대적인 선인가? 해리엇의 사랑은 숭고하지만 동시에 무모하다. 그녀는 다른 네 아이의 행복과 안전보다 벤을 보호하는 일을 우선시한다. 이는 모성애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드러낸다. 레싱은 이를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랑이 얼마나 고독하고, 얼마나 사회와 부딪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섯째 아이』는 가족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족은 무조건적인 수용과 보호의 공간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구성원 모두의 행복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배제를 선택해야 하는가. 벤은 단순히 한 가족의 비극이 아니라, ‘다름’과 ‘이질성’을 대하는 사회의 두려움과 냉혹함을 상징한다. 그가 공동체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그의 폭력성 때문이지만, 그 폭력성은 다시 사회의 거부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이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묻는 질문처럼, 원인과 결과가 얽혀 풀리지 않는 매듭이 된다.

 

레싱의 문장은 차갑지만, 그 안에는 숨겨진 연민이 있다. 그는 벤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그의 존재와 그로 인해 변해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춘다. 독자는 설명의 빈자리에 자신의 감정을 채운다. 어떤 이는 해리엇의 헌신에 감동할 것이고, 어떤 이는 그녀의 선택에 분노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벤을 단지 불행한 존재로만 볼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행복한 결말은 없다. 벤은 자라서 거리의 무리와 어울리고, 해리엇은 여전히 그를 걱정하며 살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상처를 입고, 데이비드는 더 이상 예전의 남편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작품의 힘이다. 레싱은 인간의 삶에서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정면으로 보여주고, 독자가 그 앞에서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다섯째 아이』는 어쩌면 ‘사랑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사랑이 부딪히는 현실’에 대한 기록이다. 이상과 현실이 맞부딪칠 때, 이상은 종종 현실에 패배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얼굴, 특히 어머니의 얼굴은 패배 속에서도 강렬한 빛을 발한다. 해리엇의 사랑은 가족을 지키지 못했지만, 그 사랑 자체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을 향한 몸부림이었고, 그 몸부림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소설을 덮고 나면, 행복했던 장면들이 아니라 벤을 품에 안고 멀리 걸어가는 해리엇의 뒷모습이 오래 남는다. 그것은 승리의 걸음도, 패배의 걸음도 아니다. 그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걸어야 하는, 끝없는 길 위의 발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