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는 마치 오래된 창고 속에서 발견한, 몇 조각이 사라진 퍼즐 같다. 그림은 완성되지 않지만, 사라진 부분이 오히려 이야기를 만든다. 그 결손 속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진실과 거짓, 사랑과 배신을 동시에 본다.
그 퍼즐의 주인공은 가롯 유다. 성서에서 그는 한 줄로 요약된다—배신자. 그러나 다자이의 손끝에서 그는 이름 없는 군중이 아니라, 숨소리와 체온을 가진 한 인간이 된다. 그의 고백은 법정의 증언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삐걱이며 흘러나온 피 묻은 시처럼 들린다.
유다는 처음 예수를 사랑했다. 그 사랑은 눈을 들어 바라보는 순간마다 더 깊어졌다. 그러나 빛을 오래 바라본 자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예수의 시선이 세상으로 흩어질 때, 유다는 자신이 그 빛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가벼운 상처로 남지 않았다. 사랑은 천천히 부식되어 질투가 되었고, 질투는 증오로 무르익었다. “내가 품을 수 없다면 무너뜨리겠다.” 그의 심장은 이 결심으로 서서히 조여 왔다. 퍼즐의 조각들이 처음에는 흩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파국이라는 그림을 향해 스스로 맞물려 들어가는 것처럼.
마지막 순간, 유다는 이렇게 말한다.
“제 이름은 장사꾼 유다, 헤헤, 가롯 유다입니다.”
짧은 웃음, ‘헤헤’—그것은 돌로 만든 방패처럼 보이지만, 손끝만 대어도 깨질 만큼 얇았다. 웃음은 고백의 열기를 가리려는 얇은 천에 불과했다. 다자이는 그 천이 바람에 젖혀지는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뒤에는 오직 절망과 허무가 앉아 있었다.
이 웃음은 가면이었지만, 완벽한 가면이 되지 못했다. 그 틈새로 유다의 상처와 후회, 그리고 부서진 사랑의 잔해가 흘러나왔다.
유다의 내면은 하나의 그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질감의 조각들이 모인 집합이었다. 투명한 유리 조각 같은 애정, 날카로운 금속 조각 같은 분노, 쉽게 부서지는 도자기 조각 같은 열등감. 이 모든 조각이 억지로 붙들려 있었지만, 그 결합에는 아무 접착제도 없었다.
다자이는 이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유다를 인간으로 만든다고 말하듯, 조각의 모서리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 모서리는 독자를 찌르고, 찔린 자리로 감정이 스민다.
성서 속 유다는 악인으로 완결된다. 그러나 다자이의 유다는 열린 결말이다. 그는 우리 속에 숨어 있는 ‘파괴의 충동’을 은밀하게 비춘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이 우리를 가두면 부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사랑은 순수하기보다 불완전하고, 빛을 향한 손은 언제나 그림자의 무게를 함께 쥔다.
유다는 실패한 사랑의 화신이자, 끝내 자기 자신마저 배신한 인간이다. 그렇기에 그는 더 이상 먼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다. 그는 거울 속에서, 혹은 어두운 밤 혼자 앉아 있을 때, 불현듯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
다자이의 「직소」는 결코 완성된 퍼즐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몇 조각을 뽑아내어 독자의 손에 쥐여준다. 우리는 그 조각을 들고, 맞출 수 없는 그림 앞에 선다.
아마 이 퍼즐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빈칸을 응시하는 동안, 우리는 어쩌면 우리 자신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과 증오, 애정과 질투, 빛과 그림자가 뒤엉킨 마음의 그림을.
유다의 마지막 웃음은 그래서 오래 남는다. 그것은 미완성의 웃음, 부서진 퍼즐 조각 위에 놓인 한 줄기 빛이다. 그 빛이 퍼즐을 완성시키지는 않지만, 빈칸을 더 깊이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빈칸이야말로, 우리가 끝내 붙들고 있는 진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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