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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책 리뷰

다와다 요코의 『헌등사』를 읽고

by Stefanokim 2026. 3. 11.

세상의 끝은 대개 거대한 폭발이나 비명 횡사로 점철된 아포칼립스를 상상하게 하지만, 다와다 요코가 그려낸 『헌등사』의 세계는 기묘하리만치 고요하고, 서글플 정도로 정적입니다. 일본은 외해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한때 찬란했던 문명의 이기들은 먼지 쌓인 유물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고도 슬픈 풍경은 생의 질서가 뒤바뀌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노인들은 죽지 못한 채 백 세를 넘겨서도 강건한 체력을 유지하며 영생에 가까운 저주를 살아가고,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백발을 희끗거리며 뼈가 부서지는 고통 속에 시들어갑니다.

주인공 요시로는 무려 백 살이 넘은 노인이지만 매일 아침 조깅을 하고 손자 무메이를 돌봅니다. 반면 그의 증손자 무메이는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소화시키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가녀린 존재입니다. 죽음이 허락되지 않는 노년과 삶이 허락되지 않는 유년의 대비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내일'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 공예였는지를 서늘하게 감각하게 합니다. 요시로의 건강함은 무메이의 쇠약함 앞에서 일종의 죄책감이 됩니다. 그는 아이의 약한 이빨을 대신해 음식을 잘게 다지고, 부러지기 쉬운 아이의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온 신경바늘을 세웁니다. 이들의 일상은 비극적이지만, 그 안을 채우는 서로를 향한 응시는 지극히 다정하여 독자의 마음을 미어지게 합니다.

작가 다와다 요코는 독일어와 일본어라는 두 언어의 경계에서 글을 쓰는 '언어의 유목민'답게, 이 소설에서도 언어의 소멸과 탄생을 예민하게 포착합니다. 외래어가 금지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외래어' 대신 억지로 순화된 말을 쓰도록 강요받습니다. 하지만 요시로는 자꾸만 입안에서 튀어나오는 옛 단어들을 굴리며 사라진 세계의 맛을 되새깁니다. 단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특정 시대의 공기, 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를 담아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요시로가 무메이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속의 단어들은 마치 박물관의 박제처럼 딱딱해졌지만, 무메이의 상상력 속에서 그것들은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인터넷이나 비행기 같은 거창한 단어들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앉은 것은, 흙의 감촉과 바람의 소리, 그리고 서로의 숨소리에 집중하는 원초적인 감각들입니다. 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실체가 사라진 뒤에도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것, 그것이 요시로가 무메이에게 전해주는 가장 큰 유산입니다.

무메이는 이 소설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인 동시에 가장 눈부신 빛입니다. 아이는 걷는 것조차 힘겨워 특수 신발을 신어야 하고, 잇몸이 약해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못하지만 결코 비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메이는 세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맑은 눈을 가졌습니다. 아이에게 세상은 결핍된 곳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감각이 도착하는 선물 꾸러미와 같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자신의 일부로 수용하는 무메이의 모습은, 기성세대가 망쳐놓은 지구에서 그 대가를 온몸으로 지불하고 있는 아이가 오히려 노인을 위로하는 역설적인 감동을 자아냅니다. 이름조차 '없음'을 뜻하는 무메이(無名)이지만, 그 존재 자체는 무엇보다 확실한 생명의 신호로 다가옵니다.

일본이 쇄국 정책을 펼치며 섬으로 남기를 선택한 설정은 현대 사회의 단절과 혐오에 대한 은유로 읽힙니다. 외부 세계와의 소통이 끊긴 상태에서 사람들은 점점 작고 확실한 것에만 집착하게 되지만, 인간은 본래 연결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헌등사'라는 직책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건강한 어린이를 선발해 해외로 보내 연구 대상으로 삼겠다는 비인도적인 프로젝트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것은 이 죽어가는 섬에서 밖으로 내보내는 '편지'와 같습니다. 우리가 여기 살아있다고, 비록 몸은 부서져 가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타인을 향해 흐르고 있다는 간절한 신호인 것입니다. 요시로가 무메이를 헌등사로 보내기로 결심하는 과정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를 더 넓은 세계의 가능성 속으로 밀어 넣는 숭고한 방생입니다.

다와다 요코는 파국을 말하면서도 결코 절망의 구렁텅이로 독자를 밀어넣지 않습니다. 대신 그녀는 아주 세밀한 묘사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웁니다. 무메이가 마시는 한 모금의 차, 요시로가 정성껏 가꾸는 정원의 꽃들,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 같은 것들 말입니다. 세상이 무너져 내려도 인간은 여전히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우리가 바쳐야 할 진정한 등불은 거창한 구원책이 아니라, 곁에 있는 존재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그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주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헌등사』를 덮으며 나는 자문해 봅니다. 나의 오늘은 누군가가 간절히 바친 등불의 결과가 아닌지, 그리고 나는 나의 뒤를 올 이들에게 어떤 빛을 건네줄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비록 우리의 미래가 소설 속 풍경처럼 잿빛일지라도, 서로의 시린 손을 잡아주는 온기만 있다면 그곳에도 생명은 피어날 것입니다. 무메이의 맑은 눈동자에 비친 파란 하늘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습니다. 그것은 비극 속에서도 기어이 찾아낸 아름다움, 즉 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