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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책 리뷰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를 읽고

by Stefanokim 2026. 3. 6.

메로스는 달린다.
그의 발은 대지를 치고, 그의 심장은 두려움과 의심을 껴안은 채 뛰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이 작품을 ‘우정 이야기’라고 배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소설은 우정보다 더 깊은 곳, 인간이라는 존재의 밑바닥을 건드린다.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을 쉽게 믿지 않았다. 그의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인간 실격』을 떠올리면, 인간은 늘 위태롭고 모순적이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존재다. 그런데 『달려라 메로스』에서는 조금 다르다. 여기서 인간은 끝까지 달린다. 도망치지 않는다.

메로스는 정의감으로 움직인다. 폭군 디오니소스를 죽이겠다고 결심한 것도 분노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가장 큰 시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약한지를 깨닫는다. 길이 막히고, 강물이 불어나고, 태양은 뜨겁게 내리쬔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한다.
“도망칠까?”
그 순간이 이 작품의 진짜 심장이다.

 

우리는 메로스를 영웅이라 부르지만, 그는 결코 완전한 영웅이 아니다. 그는 흔들린다. 의심한다. 포기하고 싶어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그를 이해하게 된다. 인간은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약속은 때로 너무 무겁고, 신뢰는 너무 큰 짐이다.

세리누스는 말없이 인질이 된다. 그는 친구를 믿는다. 그 믿음은 근거가 없다. 증거도 없다. 다만 마음 하나뿐이다. 신뢰는 언제나 증명 불가능한 선택이다. 그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이미 모험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사실 결말이 아니다. 메로스가 거의 쓰러질 듯 달리며, “나는 믿음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되뇌는 순간이다. 그는 세리누스를 위해 달리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해 달린다. 만약 그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세리누스가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그는 스스로를 잃는다.

디오니소스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그는 수많은 배신을 겪었다. 그래서 그는 냉혹해졌다. 이 작품은 묻는다.
“인간을 믿지 않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가?”
그리고 또 묻는다.
“그렇다면 믿는 것은 어리석은가?”

 

메로스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반쯤 죽은 사람처럼 쓰러진다. 그 장면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탈진의 울음에 가깝다. 신뢰는 화려하지 않다. 그것은 피투성이가 된 채 간신히 도착하는 것이다.

그들의 포옹은 감동적이지만, 동시에 처절하다. 그들은 서로를 믿었고, 그 믿음이 서로를 구했다. 이때 디오니소스가 무너진다. 폭군은 칼이나 힘이 아니라, ‘신뢰’ 앞에서 패배한다.

 

이 소설은 낭만적이지만 순진하지 않다. 왜냐하면 작가는 인간의 약함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로스는 끝까지 달리지만, 그 과정은 추하고 고통스럽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이야기는 현실적이다.

우리는 매일 약속을 한다. 작은 약속, 큰 약속.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달려본 적이 있는가. 때로는 변명으로, 때로는 상황 탓으로 우리는 멈춘다. 『달려라 메로스』는 우리에게 말한다.
“상황이 아니라 선택이다.”

 

이 작품이 오래도록 읽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을 믿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그 위험을 감수할 때 얼마나 숭고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메로스는 영웅이 아니라, 끝까지 인간으로 남으려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달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따라 마음속 어딘가를 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