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과 말/책 리뷰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by Stefanokim 2026. 3. 16.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적인 역사를 복기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몸속에 잠들어 있던 가장 연약하고도 뜨거운 감각을 깨워,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거대한 통증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일입니다. 이 소설은 활자로 기록된 서사라기보다, 누군가의 몸에서 막 뜯어낸 생생한 살점과 그 위로 흐르는 진득한 혈흔에 가깝습니다.

 

소설의 중심에는 중학교 3학년 소년 ‘동호’가 있습니다.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시신들이 가득 찬 상무관에서 번호를 매기며 유족들을 안내하던 그 맑은 눈의 소년. 우리는 작가가 설정한 ‘너’라는 2인칭 대명사를 통해 동호의 시선을 빌려 입습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왜 거기 있었니? 왜 돌아가지 않았니?" 동호가 그곳에 남았던 이유는 거창한 민주주의의 신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옆에서 죽어간 친구에 대한 미안함, 혼자 살아남았다는 지독한 부채감, 그리고 인간으로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그 숭고한 ‘머뭇거림’ 때문이었습니다. 그 머뭇거림이 결국 소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때, 독자인 우리의 가슴에는 깊은 구멍이 뚫립니다. 소년은 죽었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살아남은 우리에게 하나의 낙인이 되어 찍힙니다.

 

한강은 죽음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육체’의 관점에서 죽음을 응시합니다. 2장 ‘검은 숨’에서 묘사되는 시신들의 부패 과정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세밀합니다. 가스가 차오르고 피가 섞인 진물이 흐르는 육체들. 하지만 작가는 그 비참한 육체의 층위 위에 ‘혼(魂)’의 목소리를 겹쳐 놓습니다. 자신의 시신 위에 겹겹이 쌓인 다른 시신들의 무게를 느끼며, 영혼들이 서로의 그림자를 붙들고 흐느끼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입니다.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기 위해 국가가 가한 폭력은 육체를 파괴했지만, 그 파괴된 육체들 사이에서 피어오른 영혼들의 연대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무엇인지를 증명해냅니다. "우리의 몸은 탑처럼 쌓여 있었다"는 고백은,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인간적인 슬픔의 공동체를 보여줍니다.

 

소설은 80년의 도청 안에서 멈추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의 훼손된 삶을 추적합니다. 뺨 일곱 대를 맞고도 침묵해야 했던 편집자 은숙, 모진 고문 끝에 자신의 육체를 혐오하게 된 선주와 진수. 그들에게 시간은 약이 아니라 독이었습니다. 고문실에서 벌어진 일들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잔혹함의 끝을 보여줍니다. 모나미 볼펜으로 손가락 사이를 비트는 사소해 보이는 폭력이 한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영구히 파괴하는지를 지켜보며, 우리는 깊은 절망을 느낍니다. "군중의 도덕성을 믿었던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선주의 독백은, 폭력이 남기는 가장 무서운 상처가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임을 뼈저리게 가르쳐줍니다.

 

제목이 ‘소년이 갔다’가 아니라 『소년이 온다』인 이유는 명확합니다. 80년 5월에 멈춰버린 그 소년은 과거의 유령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로 되돌아오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때, 역사적 비극을 숫자로만 기억하려 할 때, 소년은 피 묻은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나 옷자락을 붙잡습니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 소설을 쓰는 과정이 스스로에게도 커다란 고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자료를 조사하며 만난 끔찍한 진실들 앞에서 작가는 묻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소설은

그 질문에 대한 한강식의 처절한 대답이자, 이름 없이 스러져간 영혼들을 향한 가장 긴 장례식입니다.

 

『소년이 온다』를 덮으며 우리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진정한 치유는 망각이 아니라 ‘철저한 기억’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한강의 문장은 독자의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듯 아프지만, 그 아픔은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드는 촉매제가 됩니다. 소년은 오늘도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차가운 총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지냈던 뜨거운 눈물과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마음입니다. 소년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의 죽음 뒤에 숨겨진 수많은 ‘너’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이 이 비극적인 에세이를 마치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지막 예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