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쓰가루』는 소설이면서 여행기이고, 자서전이면서 고향에 대한 길고 느린 독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살아남은 자가 고향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기록이다. 다자이는 이 책에서 고향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잔혹하게 해부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고향이라는 장소가 자신에게 남긴 상처와 온기를 동시에 꺼내어, 말하듯 적어 내려간다. 『인간실격』에서 끝내 인간 세계에서 탈락한 인물이 있었다면, 『쓰가루』에는 아직 인간으로 남아 있으려 애쓰는 한 사람이 있다.
『쓰가루』는 1944년, 전쟁 말기의 일본에서 발표되었다. 다자이는 도쿄에서 이미 문단의 이름이었고, 동시에 수차례 자살 시도와 약물 중독, 가족과 사회로부터의 끊임없는 이탈을 겪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고향 아오모리현 쓰가루 지방을 여행하며 쓴 이 글은, 흔한 의미의 “귀향기”와는 전혀 다르다. 여기에는 성공한 작가가 돌아와 느끼는 감상도, 패배자의 자기연민도 없다. 대신 고향 앞에서조차 편안해질 수 없는 한 인간의 불안한 숨결이 있다.
쓰가루는 일본 열도의 북쪽 끝이다. 눈이 많고, 바람이 거칠며, 말이 투박하다. 다자이는 이 지역의 자연과 사람들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산, 바다, 눈보라, 사투리, 선술집, 역의 공기, 사람들의 얼굴. 그러나 이 모든 묘사는 풍경화가 아니라 자기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사용된다. 그는 쓰가루를 바라보면서 늘 자신을 본다. 고향은 배경이 아니라, 그 자신과 끝없이 마주 서 있는 상대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다자이의 시선이 결코 안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감동받는 순간에도 곧바로 비틀고, 웃음 뒤에는 즉시 냉소를 덧붙인다. 누군가의 친절을 받으면 감사해하면서도, 그 친절을 받아도 되는 인간인가 스스로를 의심한다. 고향 사람들의 소박함 앞에서 그는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중적인 감정, 아니 다중적인 감정들이 문장 속에서 겹겹이 흔들린다.
다자이는 자신을 “쓰가루의 아들”이라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거리 두며 바라본다. 고향 사람들의 억센 삶 앞에서 그는 자신이 너무 말라 있고, 너무 약하고, 너무 도쿄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음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알고 있다. 이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쓰가루』는 떠난 자의 죄책감과 남아 있는 자의 체념이 교차하는 장소가 된다.
이 작품에서 고향은 결코 이상향이 아니다. 쓰가루는 가난하고, 거칠고, 폐쇄적이며, 변화에 둔감한 곳이다. 다자이는 그 현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 가난을 조롱하지 않고, 그 둔함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그들의 말투, 농담, 체념, 웃음 속에는 살아야만 했던 시간들이 응축되어 있다.
『쓰가루』의 문장은 유난히 구어적이고, 때로는 허술해 보일 정도로 느슨하다. 그러나 그 느슨함은 계산된 것이다. 다자이는 이 작품에서 문학적 완성도보다 말의 진실성을 택한다. 그는 잘 쓰려 하지 않고, 숨기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문장에는 종종 머뭇거림이 남아 있고, 자기부정이 노출되며,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흘러간다. 이 미완의 느낌이야말로 『쓰가루』를 살아 있는 텍스트로 만든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는, 다자이가 고향 사람들과 대화할 때 느끼는 미묘한 거리감이다. 그들은 다자이를 “유명한 작가”로 대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그 집 아들”로 부른다. 그 이중적인 시선 속에서 다자이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이미 떠난 자이지만, 완전히 떠날 수는 없는 자. 이 모순된 위치는 다자이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인간실격』의 요조가 사회에서 탈락했다면, 『쓰가루』의 다자이는 사회 이전의 장소로 돌아와도 안식을 얻지 못한다. 이것은 중요한 차이다. 고향조차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자이 문학의 절망을 한층 더 깊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품에는 『인간실격』에는 없는 잔존하는 애정이 있다. 그는 쓰가루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랑이 불완전하고, 아프고, 쉽게 말로 표현되지 않을 뿐이다.
다자이는 고향의 자연을 묘사하면서도 결코 장엄하게 그리지 않는다. 눈보라는 고통스럽고, 바다는 차갑고, 길은 멀다. 그러나 그 혹독함 속에서 그는 어떤 정직함을 본다. 쓰가루의 자연은 인간을 위로하지 않지만, 속이지도 않는다. 아마도 다자이가 이곳에서 느낀 것은 위로가 아닌 진실이었을 것이다.
『쓰가루』는 전쟁 말기에 쓰였다. 국가 전체가 허위의 언어로 가득 차 있던 시기, 다자이는 고향이라는 사적인 공간을 통해 진실한 말을 되찾으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영웅도, 이념도, 승리도 없는 장소. 그저 사람들이 태어나고, 일하고, 늙고, 죽는 땅. 쓰가루는 다자이에게 있어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드문 장소였을지 모른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다자이는 끝내 구원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는 고향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지만,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 불안정함 속에서 『쓰가루』는 독자에게 묘한 위안을 준다. 삶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한 가지 정직한 태도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쓰가루』는 화려하지 않다. 극적인 사건도 없고, 강렬한 플롯도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조용히 오래 남는다. 마치 겨울이 길게 이어지는 쓰가루의 풍경처럼, 읽고 난 뒤에도 마음속에 차가운 여백을 남긴다. 그리고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에게 고향이란 무엇인가.
나는 떠난 사람인가, 남은 사람인가.
혹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도는 사람인가.
다자이 오사무는 『쓰가루』에서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질문을 놓고 떠난다. 그러나 그 질문이야말로 이 작품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문학적 유산이다. 고향은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끝내 정리되지 않는 감정의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일 자체가,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자이는 이 조용한 여행기를 통해 우리에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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