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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책 리뷰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를 읽고

by Stefanokim 2025. 7. 21.

 

언제부터 우리는 말로 거래를 하기 시작했을까. 

아니, 언제부터 우리는 말이 거래의 도구가 되는 세계에 살게 되었을까.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는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에서 파는 자와 

그것을거절하려는 사이의 팽팽한 긴장 위에 언어의 정글을 펼쳐놓는다. 

장소는 불명확하고, 시간은 모호하며, 인물의 이름조차 없다. 

단지 거래인(dealer) 고객(client)이라 불릴 뿐이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만난다. 

목화밭이라는 배경은 상징적이다. 

미국 남부의 목화밭은 노예제, 노동, 거래, 착취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두운 역사 위에 던져진 인물은 마치 존재의 뿌리를 질문하듯, 

말과 사이에서 끊임없이 밀고 당기기를 한다.

 

작품에서 주목해야 것은거래 내용이 없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에는 구체적인 상품이 빠져 있다. 

무엇을 사고파는가? 

쾌락인가, 약물인가, 혹은 감정이나 이해? 

작가는 끝내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중요한 것은 거래라는 형식 자체, 말과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역학이며, 

속에 감추어진 인간 존재의 공허이다.

 

콜테스는 언어를 믿지 않는다. 

그는 언어의 불완전함, 언어가 감추는 진실, 그리고 침묵이 품은 울림을 꿰뚫어 작가이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지만, 

말들은 어딘가 공허하고 무력하다. 상대는 결코 완전히 이해되지 않으며, 

말은 서로를 가로막는다. 

희곡은 의사소통을 통해 관계가 형성된다는 이상을 부정한다. 

오히려 말은 타인과의 거리감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

 

콜테스는 198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소외된 자들, 경계선에 자들, 

언어의 주변에 머무는 자들의 이야기를 쓰곤 했다. 

그중에서도 작품은 가장 간결하고, 가장 압축된 형태로 인간 존재의 단면을 보여준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짧은 대화는, 마치 생과 , 욕망과 거부, 

타자성과 자기 이해 사이의 극한 대립을 상징한다.

 

희곡을 무대에서 가장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침묵의 무게다. 

대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말보다 사이의 침묵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것은 마치 작가가 말한다. 

진짜 말은 말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작품을 통해 깨닫게 된다. 

인간은 결국 어떤 거래를 위해 세상에 나오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순수하거나 타락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누군가는 말을 거절하며, 

그렇게 서로를 밀어내며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인간 군상들에게 거울처럼 작용한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거절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해받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오해받기를 무릅쓰고서라도 자신만의 언어를 지키고 싶은가?

 

콜테스는 끝내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읽는 우리는, 침묵 속에서 각자의 해답을 더듬어가게 된다.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고독은 뚜렷하게 남는다. 

그것이, 작품이 주는 강렬한 체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