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문득, 나의 존재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계 속의 아주 작은 부품에 불과하다는 서글픈 자각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사르트르가 말한 '무상성'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이 거칠고 막막한 세계에 툭 던져진 것만 같은 기분 말입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대체 인간은 무엇을 동력 삼아 이 권태롭고도 고통스러운 생을 지속하는가. 19세기 러시아의 광활한 설원 위에서 이 질문에 답을 내놓았던 한 노작가가 있습니다. 레프 톨스토이, 그가 남긴 나직한 고백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100여 년의 시간을 건너와 오늘날 길을 잃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온기를 전합니다.
이야기는 가난한 구두수선공 세묜이 길가에 벌거벗은 채 버려진 낯선 청년 미하일을 만나며 시작됩니다. 세묜 또한 하루하루가 고단한 소시민이었습니다. 외투 한 벌을 맞출 돈조차 없어 아내와 돌려 입어야 했던 그에게, 정체 모를 부랑자를 집으로 데려오는 일은 숭고한 자선이라기보다 차라리 무모한 도박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의 아내 마트료나 역시 처음에는 독설을 내뱉으며 분노합니다. 우리 먹을 빵도 부족한 마당에 누굴 돕느냐는 그녀의 외침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정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미하일의 파리한 눈빛과 마주친 순간, 마트료나의 마음속에서 차가운 계산은 멈추고 대신 연민이라는 이름의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그가 빵 한 조각을 건네는 그 찰나, 차갑던 방 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빛이 차오릅니다.
미하일은 사실 인간의 영혼을 거두러 왔다가 하느님의 명을 거역해 지상으로 쫓겨난 천사였습니다. 그는 인간 세상에 머물며 세 가지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사람의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사의 눈에 비친 인간은 모순덩어리였습니다. 자신의 구두가 일 년을 갈지 하루 뒤에 주인이 죽을지도 모르는 존재이면서,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가장 비싼 가죽으로 장화 제작을 주문하는 거만한 부자들을 보며 미하일은 인간에게 자신의 앞날을 아는 능력이 허락되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내일의 불행은커녕 당장 한 시간 뒤에 들이닥칠 죽음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그 막막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부모를 잃은 쌍둥이 자매를 친자식처럼 키워낸 이웃집 여인의 눈물에서 미하일은 마지막 답을 찾습니다. 인간은 각자 자기 일을 걱정하고 보살피는 마음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사랑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는 진리였습니다. 구두를 꿰매는 투박한 손길 사이로, 낯선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수프 한 접시 위로, 자신의 아이가 아님에도 기꺼이 젖을 물리는 헌신 속으로 하느님은 깃들어 계셨습니다.
톨스토이는 이 짧고도 강렬한 우화를 통해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삶의 동력을 교정해줍니다. 우리는 흔히 돈이나 명예, 혹은 완벽하게 설계된 미래의 계획이 나를 살게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그런 딱딱한 본질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가진 아주 작은 것을 누군가와 나누었을 때 느껴지는 생생한 연결감, 즉 사랑이 우리를 존재하게 합니다. 나 홀로 성을 쌓고 그 안에 고립되어 있을 때 인간은 사르트르가 느꼈던 '구토'와 같은 허무에 직면하지만,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고 손을 내미는 순간 비로소 '대기적'인 자아를 넘어선 진정한 실존에 도달하게 됩니다.
사랑은 거창한 구호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게 남은 마지막 빵 한 조각을 떼어주는 구체적인 행위이며, 상대의 눈에 어린 슬픔을 읽어내는 섬세한 시선입니다. 톨스토이가 그려낸 러시아의 겨울은 혹독하게 춥지만, 그 추위를 이겨내는 것은 두꺼운 모피 코트가 아니라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낮은 천장의 오두막이었습니다. 우리네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고,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의 '이웃'이 되어 서로를 위해 글을 쓰고, 밥을 짓고, 위로를 건네는 한 그곳에 삶의 의미가 머뭅니다.
결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서로'라는 단어 안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타인에게 베푼 사랑이 다시 나를 살게 하는 동력이 되어 돌아오는 그 신비로운 순환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연히 던져진 존재라는 서글픔을 털어내고 목적 있는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당신이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사소한 친절이, 실은 당신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밧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빌려 이 긴 겨울 같은 생을 함께 건너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비로소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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