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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책 리뷰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제2부 타인의 증거를 읽고

by Stefanokim 2026. 4. 3.

제2부 <타인의 증거>는 앞선 <비밀 노트>가 구축해 놓은 단단하고 명료한 세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시작됩니다. 1부가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감정을 거세하고 사실만을 기록하는 '아이들의 성채'였다면, 2부는 그 성채가 무너진 폐허 위에서 홀로 남겨진 자가 겪는 지독한 고독과 정체성의 혼란을 다룹니다. 우리는 여기서 루카스라는 인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1부에서 알았던 그 소년이 맞을까요?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여기서부터 독자의 발밑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국경을 넘어간 형제와 남겨진 형제. 이제 루카스는 더 이상 '우리'라는 복수형 주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1부에서 그토록 철저하게 훈련했던 '감정의 배제'와 '사실의 기록'은, 홀로 남겨진 루카스에게는 더 이상 방패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됩니다. 루카스는 마을에 남아 할머니의 집을 지키며 살아가지만, 그의 삶은 실체 없는 유령의 발걸음과 같습니다. 그는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누군가를 돌보고, 사랑을 시도하지만 그 모든 행위의 밑바닥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바로 '부재하는 타인', 즉 떠나간 형제에 대한 결핍입니다.

2부의 제목이 <타인의 증거>인 이유는 중의적입니다. 루카스는 끊임없이 타인의 고통에 개입합니다. 기형아를 낳고 절망에 빠진 야스미나, 근친상간의 굴레에서 고통받는 빅토르, 그리고 지독한 고독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는 묵묵히 지켜보고 돕습니다. 하지만 이 도움은 자비나 동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루카스는 타인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으려 합니다.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비로소 내가 이 세상에 실재한다는 '증거'를 얻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인 셈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루카스가 입양하여 키우는 아이, 마티아스입니다. 마티아스는 루카스의 일그러진 거울입니다. 루카스는 이 아이에게 지식과 언어를 가르치지만, 동시에 아이는 루카스가 가진 결핍과 상처를 고스란히 투영합니다. 마티아스는 루카스가 형제와 나누지 못한 사랑을 쏟아붓는 대상인 동시에, 결코 메워질 수 없는 과거의 상실을 환기하는 존재입니다. 결국 마티아스의 비극적인 선택은 루카스가 쌓아 올린 가상의 세계, 즉 '타인을 통해 나를 증명하려 했던 시도'가 얼마나 위태로운 모래성인지를 폭로합니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루카스가 써 내려가는 기록입니다. 1부의 '비밀 노트'가 객관적 사실의 기록이었다면, 2부에서 루카스가 쓰는 글들은 점차 망상과 기억의 왜곡으로 얼룩집니다. 그는 죽은 이들의 이름을 빌려오고, 존재하지 않는 형제와의 대화를 기록합니다. 독자는 혼란에 빠집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루카스라는 남자는 실존하는 인물인가, 아니면 국경을 넘지 못한 소년이 만들어낸 환상인가? 혹은 애초에 쌍둥이라는 존재 자체가 전쟁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분열된 자아의 투영이었던 것일까?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2부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쉽게 휘발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 속에서 '착한 사람' 혹은 '기이한 이방인'으로 불리지만, 그 누구도 그의 진실된 내면에 닿지 못합니다. 그는 철저히 '타인'들의 시선 속에서만 증거될 뿐, 자기 자신에 의한 확신은 상실한 상태입니다. 이는 전쟁 이후 황폐해진 유럽의 정신적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이데올로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 불안정한 자아뿐입니다.

또한 2부에서는 언어의 역할이 '방어'에서 '치유'로, 다시 '조작'으로 변화합니다. 루카스는 서점에서 책을 정리하고 글을 쓰며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가 문장을 쌓아 올릴수록 진실은 멀어지고 허구의 벽은 높아만 갑니다. 기록한다는 행위는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기억을 덮어버리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의 '거짓말'이 됩니다. 루카스가 집착하는 그 기록물들은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가 이미 내면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부고장에 가깝습니다.

결국 <타인의 증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을 당신이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 곁에 있는 타인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기록한 과거의 기억입니까? 만약 그 타인이 사라지고 기억마저 거짓이라면, 당신이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습니까? 루카스의 고독은 단순히 혼자 있다는 외로움이 아니라, 존재의 근거를 상실한 자의 근원적인 공포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지만 문 너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이름을 부르지만 대답하는 것은 자신의 메아리뿐입니다. 2부의 마지막에 이르러 루카스는 사라집니다. 그는 정말로 어디론가 떠난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지워진 것일까. 작가는 독자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않은 채, 차디찬 의문만을 남겨둡니다.

인간은 타인의 눈동자라는 거울 없이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루카스는 그 거울을 찾으려 헤맸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깨진 거울 조각에 비친 파편화된 자신의 모습뿐이었습니다. <타인의 증거>는 그 파편들을 하나하나 줍다가 손을 베이는 경험과 같습니다. 아프고 시리지만, 그 피가 흐르는 감각만이 역설적으로 우리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