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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책 리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by Stefanokim 2026. 3. 25.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는 일은 단순히 70년대 한국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넘어, 우리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인간 존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일깨우는 통증에 가깝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서늘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문장들은 마치 예리한 칼날처럼 우리가 안주하고 있던 안락한 일상의 표면을 가르고, 그 아래 감춰진 소외와 차별의 응어리를 드러냅니다. 이 작품은 한 시대의 기록이자, 동시에 시대를 초월해 반복되는 인간의 비극과 희망에 관한 서사시입니다.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그 이름조차 잔인할 정도로 역설적인 동네에 살던 난장이 가족의 삶은 우리 사회가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무엇을 발밑에 깔고 지나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아버지는 난장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작 작았던 것은 신체적 왜곡 때문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상이 그에게 허락한 공간이 너무나도 좁고 가팔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굴뚝을 청소하고 유리창을 닦으며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닿으려 애썼지만, 정작 그가 발을 딛고 선 땅은 언제나 흔들리는 위태로운 벼랑 끝이었습니다.

 

작가는 이 가족의 비극을 건조하고도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냅니다. 감정을 과잉되게 쏟아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간결한 문장 사이사이에 고인 슬픔은 독자의 숨을 턱 막히게 합니다.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고, 평생의 안식처였던 집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은 단순히 건물이 파괴되는 사건이 아니라 한 인간의 세계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과정입니다. 영수, 영호, 영희 세 남매가 마주해야 했던 세상은 달콤한 사탕이 아니라 쇠공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현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 속에서 '공'이라는 상징에 주목하게 됩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어디로 향했을까요. 그것은 어쩌면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향한 처절한 몸짓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꿈꿨던 달나라는 굶주림도, 차별도, 굴욕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굴뚝 위에서 몸을 던졌을 때, 그는 달에 닿은 것이 아니라 차디찬 공장의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지독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과연 누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무능력이 아니라, 인간을 부품으로 취급하고 가난을 죄악시하는 거대한 구조적 폭력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난장이의 시대보다 훨씬 풍요롭고 화려한 세상을 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고 정보가 빛의 속도로 오가는 시대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는 보이지 않는 난장이들이 존재합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소외된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경쟁에서 뒤처진 낙오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행복동의 그늘 아래 살고 있습니다. 조세희 작가가 던진 화두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법보다 타인을 밟고 올라서는 법을 더 먼저 배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희가 오빠들을 위해, 그리고 무너진 가정을 위해 스스로를 내던지며 울음을 삼키던 장면은 읽을 때마다 심장을 저미게 합니다. "우리는 난장이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었을 그들의 침묵은 그 어떤 비명보다 강렬하게 울려 퍼집니다. 그들은 단지 인간답게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깨끗한 물로 세수를 하고,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따뜻한 밥을 먹으며,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가지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 지극히 당연한 권리가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먼 별과 같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소설은 온몸으로 답합니다. 문학은 단번에 혁명을 일으키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진실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난장이 가족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우리는 그들의 상처가 곧 나의 상처임을, 그들의 눈물이 나의 눈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작가는 기하학적인 도식과 상징적인 장치들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정교하게 해부하며, 독자로 하여금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감성을 동시에 갖게 합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허공을 떠돌며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냐고, 당신이 누리는 평온함이 혹시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은 아니냐고 말입니다. 이 책을 덮으며 우리는 다시금 다짐하게 됩니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감수성을 잃지 않겠노라고, 무너져가는 굴뚝 위에서 외롭게 서 있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기억하겠노라고 말입니다.

 

사랑으로 읽고 눈물로 덮는 이 소설은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성찰을 요구하지만, 그 끝에는 결국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비록 아버지는 떠났고 집은 허물어졌지만, 그들이 남긴 인간 존엄의 불꽃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서 명멸하고 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꽃은 피어나듯, 이 잔인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맞잡는 연대가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난장이가 꿈꿨던 그 달나라에, 모두가 평등하고 따뜻한 그곳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세희의 문장들은 그 길을 비추는 작고 낮은 등불이 되어 오늘도 우리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