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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책 리뷰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by Stefanokim 2025. 7. 3.

낯선 세상, 낯선 나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부조리에 대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마 어제였던 것 같다."
소설의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딘가 어긋났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문장 속에는 슬픔도, 절절한 그리움도 없다.

우리는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황에서 통념적으로 기대하는 감정들을 찾지 못하고,

순간 멈칫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이방인』은 독자의 마음을 비틀며 시작된다.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을 통해 우리에게 아주 단순하지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세상이 말하는 의미와 감정, 규칙은 정말 진실인가?”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는 바로 그 질문 앞에서 어떤 선택도 포장하지 않고,

진실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그 진실함이야말로 세상이 가장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는 것이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지도 않고,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묵묵히 시간을 보낼 뿐이다.

사람들은 그를 비정하다고 말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애써 슬픈 척 하지도 않고, 타인의 기대에 따라 연기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그가 가진 유일한 ‘죄’처럼 여겨진다.

 

 

이후 뫼르소는 어느 해변에서 사소한 다툼 끝에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재판에 넘겨진다.

그런데 재판정에서 사람들은 그의 살인 행위보다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일을 더 문제 삼는다.

사회는 인간이 감정을 ‘느끼는가’보다도,

‘느끼는 척을 잘하는가’를 기준으로 죄와 도덕을 판단하려 든다.

뫼르소는 그런 게임의 룰을 따르지 않았고, 결국 그는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카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갈망하지만, 세계는 그 의미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묻고 또 물어도, 삶은 침묵한다. 

 

부조리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뫼르소는 그 부조리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말한다.
“나는 행복했다.”
그 순간, 뫼르소는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수용하고,

세상의 질서와 충돌한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카뮈가 말한 부조리의 정면 대면이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이해받을 수 없는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하지만 부조리는 카뮈에게만 있는 개념은 아니다.

작가마다, 철학자마다 그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랐다.

 

 

니체에게 부조리는 ‘신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전통적 도덕이 무너진 시대에,

인간은 자신만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

그래서 니체는 ‘초인’을 말한다. 기존 질서를 뛰어넘고, 스스로의 가치로 삶을 새롭게 구성하는 존재.

그는 부조리를 뛰어넘으려 했고, 그것을 의지의 힘으로 극복하려 했다.

 

 

반면 카뮈는 니체보다 훨씬 더 냉정한 태도를 취한다.

그는 “부조리는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뫼르소처럼 세상의 불합리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카뮈가 바라본 진실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는 또 달랐다.

그는 세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받아들이는 관조의 태도를 강조했다.

소란을 피우지도 않고, 변화를 외치지도 않으며, 그저 순응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길을 택했다.

카뮈는 그르니에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결국 한 발 더 나아가,

적극적인 수용과 저항 없는 자유를 추구했다.

 

 

프란츠 카프카는 부조리를 더 기묘하게 표현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법칙 속에서 고통받는다.

이유 없는 재판, 이유 없는 벌. 그는 제도와 권위의 비인간성을 통해 부조리를 묘사했다.

 

 

사무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기다림을 통해 삶 자체의 허무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끝없이 말하고, 끝없이 기다리지만, 고도는 오지 않는다.

우리는 왜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이방인』 속 뫼르소는 이 모든 철학 속에서 어디쯤 서 있을까?

그는 의미를 부정하지 않지만,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환상도 품지 않는다.
그는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여전히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담배 연기를 피우고, 삶을 살아간다.

 

『이방인』을 읽고 나면, 우리가 사는 세계도 어딘지 모르게 낯설어진다.

늘 당연하게 여겼던 감정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규칙들,

그 모두가 사실은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것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스며든다.
그리고 그 낯섦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방인 같은 면모’를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삶은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출 필요는 없다.
카뮈는 말한다.

“삶이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도 계속 살아가는 일이다.”

 

그 한마디가 뫼르소를, 그리고 우리를 다시 앞으로 한 발 내딛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