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과 말/책 리뷰

알베르 카뮈의 『행복한 죽음』을 읽고

by Stefanokim 2025. 12. 23.

알베르 카뮈의 『행복한 죽음』은 소설이라기보다 하나의 사전(事前) 고백처럼 읽힌다. 이 작품은 『이방인』보다 먼저 쓰였지만, 마치 『이방인』을 낳기 위해 스스로를 소모한 초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결코 미완의 실험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한 죽음』은 카뮈가 평생 붙들고 갈 질문—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장 노골적으로, 가장 육체적으로 던진 작품이다. 여기서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조건이며,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다.

주인공 메르소는 가난하다. 단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소유하지 못한 상태로 가난하다. 그는 타인의 시간 속에서 일하고, 타인의 질서 속에서 숨 쉬며, 타인의 기준에 따라 피로해진다. 카뮈는 이 가난을 비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하고 건조하게 보여준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불행은 종종 소란스럽지만, 진짜 절망은 조용하다. 메르소의 삶은 바로 그 조용한 절망 위에 놓여 있다.

그러다 그는 병든 남자, 자그뤼스를 만난다. 움직일 수 없는 육체 안에 갇힌 채, 그러나 정신만은 지나치게 또렷한 남자. 자그뤼스는 이미 삶을 포기한 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삶을 가장 명확하게 인식한 인물이다. 그는 말한다. 행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시간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이 단순하고 불편한 진실 앞에서 독자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순수한 상태로 포장하려 한다. 그러나 카뮈는 말한다. 행복은 사치가 아니라 계산의 문제라고.

메르소가 살인을 결심하는 순간은 격정적이지 않다. 그는 증오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다만 선택한다. 이 선택은 도덕적으로 옹호될 수 없다. 카뮈 또한 그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 선택을 인간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극단적 시도로 그린다. 삶을 소유하기 위해 타인의 삶을 빼앗는 이 역설은, 그 자체로 인간의 비극을 응축한다. 카뮈는 여기서 독자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고 있는가.

살인 이후, 메르소는 도망치듯 여행을 시작한다. 바다와 태양, 도시와 침묵 속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의 육체를 느낀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태양 앞에서 무력했다면, 『행복한 죽음』의 뫼르소는 태양을 견디는 법을 배운다. 그는 걷고, 먹고, 잠들고, 병들고, 다시 일어난다. 이 반복 속에서 삶은 더 이상 관념이 아니다. 삶은 숨이 차는 일이고, 몸이 무거워지는 사건이며, 통증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카뮈는 이 육체성을 통해 삶을 구원하려 한다.

그러나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메르소의 몸은 점점 망가진다. 병은 그를 잠식하고, 숨은 가빠지며, 죽음은 점점 구체적인 얼굴을 갖는다. 여기서 카뮈는 중요한 전환을 이룬다. 행복은 더 이상 지속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완성에 가까워진다. 메르소는 더 이상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을 밀도 있게 살아낸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그것이 비록 범죄로 얼룩졌을지라도,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완결되었음을 받아들인다.

『행복한 죽음』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성취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메르소는 죽음을 통해 구원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 이전에 이미 자신의 삶을 긍정한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마침표에 가깝다. 카뮈는 말하는 듯하다. 인간에게 주어진 진짜 과제는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몫의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이라고.

이 소설을 덮고 나면 묘한 불편함이 남는다. 우리는 이 인물을 사랑할 수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거부할 수도 없다. 아마 그것이 카뮈의 의도일 것이다. 『행복한 죽음』은 독자를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삶을 계산하게 만든다. 나는 내 시간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가. 나는 타인의 리듬이 아닌, 나의 호흡으로 살고 있는가. 그리고 만약 오늘이 끝이라면, 나는 이 삶을 나의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카뮈는 끝내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한 문장을 조용히 남긴다. 행복한 죽음을 위해서는, 먼저 행복한 삶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삶은 언제나 고독하고, 위험하며,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문제는 그 죽음 앞에서, 내가 내 삶의 주인이었는지를 말할 수 있는가이다. 『행복한 죽음』은 그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불온하고도 정직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