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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책 리뷰

프라츠 카프카의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일족』

by Stefanokim 2025. 10. 23.


프란츠 카프카의 마지막 단편으로 알려진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일족〉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한 점의 숨결처럼 섬세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노래하는 쥐 요제피네와 그를 둘러싼 쥐의 사회를 그리지만, 그것은 단순한 우화가 아니다. 카프카는 요제피네를 통해 예술가의 고독, 인정받지 못한 존재의 운명,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예술이 갖는 의미를 깊이 탐색한다. 이 작품은 “노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예술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나아간다.

요제피네는 자신이 노래를 부른다고 믿는다. 그러나 쥐들의 귀에는 그것이 노래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일상 속에서 삑삑거림은 이미 넘쳐나고, 그녀의 목소리는 그저 조금 더 유약하고 섬세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들은 그녀의 공연에 몰려든다. 그것은 감동 때문이 아니라, 잠시 멈춰 쉴 이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가는 쥐의 일족에게 요제피네의 노래는, 실상 노래가 아니면서도 ‘멈춤’을 가능케 하는 어떤 신호이자 위로였다.

카프카의 시선은 요제피네를 향해 있지만, 사실 그는 쥐들의 세계를 그리며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예술가를 둘러싼 무관심, 혹은 과도한 열광의 기이한 공존, 그리고 예술의 실질적 가치에 대한 냉담한 현실이 쥐들의 세계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요제피네는 자신이 특별한 예술가라 믿으며 공동체의 인정을 원하지만, 그 사회는 그녀를 신성시하면서도 언제든 버릴 수 있다. 카프카는 그런 사회를 결코 냉소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예술가의 외로움이란 인간 사회의 본질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요제피네의 노래는 명확히 아름답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쥐들은 그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숨을 고른다. 그들이 느끼는 것은 음악적 감흥이 아니라, 공동의 침묵 속에서 맞이하는 휴식의 순간이다. 그 침묵은 쥐들에게 노래보다 더 큰 음악이다. 요제피네의 목소리는, 어쩌면 그저 자신들의 일상적 소리를 되비춰주는 거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쥐들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의 부재를 견딜 수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놀라울 만큼 담담하다. 요제피네가 사라진 뒤에도 쥐의 일족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간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부재가 사회 전체를 뒤흔들지 않는다. 카프카는 여기서 냉정한 진실을 말한다 — 예술가의 부재는 세상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예술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한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호흡을 조금 멈추게 할 뿐이다.

요제피네의 존재는 어쩌면 카프카 자신이기도 하다. 세상은 그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글이 ‘노래’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남긴 문장은 요제피네의 노래처럼 미세하고 섬세하지만, 바로 그 연약함이 인간 존재의 진실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다. 카프카는 요제피네를 통해 말한다. “내 목소리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아도, 나는 노래한다.”

요제피네는 예술가의 자의식과 현실 사이의 깊은 간극을 상징한다. 그녀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 믿지만, 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노래를 듣는 그 순간, 그들은 한몸이 된다. 예술이란, 바로 그 순간의 일체감에 있다. 누군가의 고통, 누군가의 외로움이 잠시나마 다른 존재의 마음을 울릴 때, 그것이 노래이고, 그것이 예술이다.

카프카는 이 작품에서 예술의 목적을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예술이 ‘쓸모없음’ 속에서 빛난다고 말한다. 요제피네의 노래가 아무런 기능도, 실질적 이익도 없듯이, 예술은 세속적 가치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존재의 한 형태로서, 살아 있음의 증거로서 존재한다. 그녀의 노래는 들리지 않지만, 그 ‘들리지 않음’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진실한 소리가 깃든다.

요제피네가 사라진 뒤에도 쥐들은 여전히 소리 내며 살아간다. 그들의 일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 마음 한켠엔 그녀의 미약한 음성이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카프카의 문장처럼, 한 번 스쳐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요제피네의 노래는 공동체의 귓속에 남은 “존재의 잔향” 으로 남는다.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일족〉은 예술가의 운명을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독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며, 그 무용함 속에서만 진실이 빛난다고 말한다. 카프카의 세계에서 예술은 이해받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 노래를 들으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것을 소음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노래라 부르지만, 중요한 건 그 소리가 우리에게 잠시라도 “멈춤”을 선물한다는 것이다. 요제피네의 노래처럼, 카프카의 문장은 우리 삶의 어딘가에서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울린다.

그 울림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너는 노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