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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책 리뷰

황웃는돌의 『나는 자살 생존자입니다』를 읽고

by Stefanokim 2025. 10. 13.

남겨진 자의 기록

아버지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분은 언제나 당당하고 강인한 사람처럼 보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날의 소식은 내 삶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남은 자는 충격 속에서 질문을 반복한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내가 알아채지 못한 신호는 없었을까, 혹시 내 사랑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대답 없는 질문은 끝없이 맴돌고, 죄책감과 분노, 슬픔과 후회가 얽혀 내 마음을 짓눌렀다.

 

자살은 그 선택을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겨진 이들은 스스로를 ‘자살 생존자’라 부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홀로 서 있게 된 사람들. 남겨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큰 고통인데, 사회는 때때로 그 고통에 침묵을 요구한다. “그만 잊어야지, 이제 털어버려야지”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죽음을 잊을 수는 없다. 다만 묻고 살아갈 뿐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오래도록 무너졌다.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아 버티지 못할 순간이 이어졌다. 죽음의 그림자가 내 삶을 덮고, 어느 순간 나도 도망가고 싶었다. 그 길로 따라가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두려웠다. 나조차 무너져 버리면, 남은 이들은 또다시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도움을 청했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고, 애도라는 과정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애도는 단순히 눈물로 끝나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분노와 원망, 이해와 용서, 그리움과 사랑이 뒤섞인 복잡한 길이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왜 우리를 남기고 떠났는지, 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지, 왜 그토록 강한 척만 하다가 결국 이렇게 사라졌는지.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원망은 차츰 이해로 바뀌었다. 아버지 역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 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 고통의 무게를 짐작할 수 없기에, 차마 섣불리 단정할 수도 없다.

 

이해의 단계에 이르자 비로소 용서가 가능해졌다. 떠나간 이를 온전히 용서한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용서는 아버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미움과 원망에 머무는 한, 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용서는 그 고통을 지워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그 고통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다짐에 가까웠다.

애도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살아 있음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매일의 하루가 얼마나 위태로운 기초 위에 놓여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곧 용기다.

 

그러나 일상은 여전히 흔들린다. 누군가는 내게 “이제는 그만 잊어야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애도는 끝나는 일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고통은 희미해질 수 있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했던 이의 부재는 늘 남아 있다. 다만 그 빈자리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채우며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침묵 속에 묻어 두었던 감정들을 꺼내어 문장으로 남기고 싶었다. 손끝으로 이어지는 단어들은 나의 슬픔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고통에 닿는다. 나처럼 남겨진 이들이, 이 글을 통해 혼자가 아님을 느끼기를 바랐다. 글쓰기는 내게 하나의 생존 방식이 되었고, 동시에 다른 생존자들을 위한 작은 위로가 되었다.

 

《나는 자살 생존자입니다》라는 제목은 내 고백이자 선언이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아버지를 잃었지만, 그 상처 속에서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이 문장은 내게 살아 있음의 증거다. 동시에 같은 길을 걷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조용한 손짓이다.

죽음을 바라보며 남겨진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살아 있음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내가 이렇게 쓰고 말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일은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나는 이제 안다. 나의 애도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나를 사람답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남겨진 자로서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고통 속에서 나는 삶을 다시 배우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자살 생존자로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은 하나의 약속이다.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이들에게, 당신이 살아 있음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전하고 싶은 작은 약속이다.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용기이고, 우리는 결국 서로의 가능성 속에서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